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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이승엽  |   local 대한민국
  • May 06, 2016,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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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ated by 이승엽   |   May 06, 2016, 23:08   |   Korean
  • 테러와의 전쟁이 미국에게 남긴 것
  • 2001911846분 세계무역센터에 첫 번째 비행기가 충돌했고 93분 두 번째 비행기가 충돌하였다. 미국에 대한 이공격은 길고 지루한 전쟁의 시발점이 되었다.

     

    1.배경

    테러와의 전쟁(War on Terror)이란 20019.11 테러를 겪은 미국이 이후 21세기 전반 확립한 정치적 행동 개념과 군사활동의 개념을 뜻한다.

    2001911일에 일어난 전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테러 사건 약칭911테러.

    이 테러로 인해 무려 약3000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당했고 이는 미국사회를 분노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2001911일이전의 미국은 없어졌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당시 미국은 복수에 눈이 말 그대로 뒤집어진 상태였고 2001920일에 조지 워커 부시 대통령이 선언한 테러와의 전쟁은 일종의 복수선언이라고 볼수있었다.

    2.성공적인 전쟁의 시작

    호기롭게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한 미국은 제일 먼저 테러의 배후를 찾는 일을 했고 며칠 안에 이 테러가 오사마 빈 라덴이 거느리는 알 카에다가 저지른 것이라는 증거가 나오자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의 집권세력인 탈레반에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를 내놓으라고 요구 하였으나

    탈레반이 이를 거부하였고 이는 곧 아프간전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개전 초기 탈레반은 미국의 대대적인 공세에 세력이 대폭축소,와해되었고 일부 잔존세력이 남부 산악지대로 은신해 들어가서 간신히 연명하는 정도였다. 새 임시정부의 수립이 결의되고, 하미드 카르자이가 임시정부의 수반으로 지명되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은 아프간전쟁을 거의 끝난 것으로 보고있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여기까지는

    3.수렁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전쟁

    하지만 이라크전쟁을 시작으로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수렁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정보기관의 보고서를 확대해석하여 이라크전을 개전하기 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라크전쟁 역시 시작은 아주 순조로웠다.

    이라크군과 민병대는 산발적 저항을 하기는 했으나 막강한 미군 및 동맹군을 저지하기는 역부족이었다. 남부 지역에서의 전투는 패배를 거듭했고, 4월에 이르러 사막의 모래 폭풍으로 미군의 진격이 잠시 묶인 틈을 타 공화국수비대를 투입해 공세를 벌였는데 그나마 이라크군 내에서 정규군이라 할 법한 유일한 병력이었지만 전면 대결에 나섰어도 미군에게 피해를 거의 주지못했다. 이후에도 진격이 계속되어 침공 2주만인 49일 바그다드는 함락되었고, 후세인 정부는 붕괴했다. 사실 전쟁수행 자체는 굉장히 우수했다. 공화국 수비대의 격멸과 바그다드 점령이라는 목표를 소규모 정예 병력을 이용한 기동전으로 깔끔하고 효율적으로 완수하였다. 문제는 다름 아닌 미흡한 전후처리였다. 점령지의 치안유지와 안정화를 위해선 침공때보다 훨씬 많은 병력(40-50만정도의)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이러한 요청등을 무시했고 조지 부시/공화당 충성도를 체크해 관료를 뽑아 보내는 막장스러운 인선 이라크에는 현금 인출기나 카드 리더기가 아예 없는데도 배급제를 완전 철폐하고 '충전식 현금 카드'를 배포하는 등 의 괴랄한정책으로 미흡한 전후처리가 이어졌다. 게다가 후세인의 독재-권위주의 아래서 봉합되었던 이슬람교파 갈등이 불거져나와 내전에 돌입했고 이라크는 말그대로 개판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치안을 박살낸 미군이 종전선언만 낼름하고는 쏙 빠져버릴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이라크만 문제가 아니었다. 2003,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은 중흥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굴부딘 헤크마티아르가 이끄는 헤즈비-이슬라미와 탈레반이 손을 잡은 것이다. 이들의 가세는 탈레반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파키스탄 등 여러 인접 지역에서 엄청난 규모의 무기와 전쟁 물자, 용병들이 쏟아져 들어옴으로써 초기 전쟁에서 입은 손실을 보충하는 건 물론 오히려 더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게 되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고 미군 전투병력 및 동맹국 병력 상당수가 이라크로 재배치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미국의 최우선관심사는 이라크로 옮겨갔으며 아프간은 이미 안정화되었다고 판단,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이 틈에 탈레반이 폭발적인 속도로 전력을 증강하게 된다. 수년에 걸친 전력 재건을 그럭저럭 끝마친 탈레반은 파키스탄 접경지대 등을 기반으로 삼아 세력을 빠르게 키우고 반격을 시작했다. 이들은 50명 이상의 규모로 미군과 아프가니스탄군을 습격하고 2~5명의 소규모로 뿔뿔이 흩어지는 게릴라 전법을 사용했는데 이들을 잡기 위해서 병력을 증원해도 모자를 판에 이라크 전쟁으로 있던 병력마저 빼가니 상황이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결국 탈레반 세력은 다시 남부에 맹위를 펼치고 수도에서 게릴라 공격을 펼칠 정도로 부활했다. 아프간전쟁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결국 미국은 탈레반과 이라크 반군 둘을 상대해야할 처지가 되었다. 아프간전쟁을 끝났다고 믿고 이라크전쟁을 개전한 것은 미국의 실책이었으며 이라크전쟁의 개전이 미국을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지루한 전쟁의 수렁에 밀어넣은 것이다.

    4.종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양 전선을 유지하기에 힘에 부친 미 행정부는 2010820. 모든 전투병력을 철수시키기 시작했다. 91, 버락 후세인 오바마 미 대통령은 이라크에서 자신들의 역할이 끝났음을 선언했고 20111215일 미국에서 공식으로 종전을 선언하여 같은해 1218일 미군은 이라크에서 완전히 철수하였다. 이라크를 과감히 포기하고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소탕에 집중하기로 결정한 미국 이에 따라 이라크에서 빠져나간 미군들이 줄줄이 아프가니스탄으로 재투입되기 시작해서 한 때 10만 명 이상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20115, 전쟁의 원인이었던 오사마 빈 라덴이 파키스탄에 숨어 있다가 미군에게 발각되어 최후를 맞았다. 미국은 전쟁의 명분이던 빈 라덴을 처단하는 데 성공했으므로 아프간전쟁을 끝낼 기회를 얻은 것이다. 결국 미국은 종전을 위해 탈레반과 협상을 타진했고, 탈레반은 이를 수락했다. 탈레반과 미국은 20136월부터 전쟁 발발 12년만에 카타르에서 평화협상을 시작했다. 처음에 양측 입장차이가 커서 협상은 얼마 안가 결렬되었지만, 미국도 어쩔 수 없기 때문에 다시 재개되었고 철군은 탈레반과의 협상과 무관하게 빠르게 진행되어 20145. 오바마는 결국 2016년까지 모든 미군을 철수시킨다고 발표하였다. 철군안은 2014년까지 통상적인 임무 등은 모두 종료하고 9800여명의 병력을 남겼다가 2016년에 이 병력도 모두 철군할 계획이라 밝혔고 결국 2014년 아프간전쟁은 공식적으로 끝이 났다.

    5.‘테러와의 전쟁에서 패배하다.

    911사태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정치적,군사적개념을 토대로 미국은 21세기에 2번의 전쟁을일으켰다. 바로 아프간과 이라크전쟁 이2개의 전쟁은 비실재하는 개념인 테러와의전쟁이 개전에 큰영향을 준만큼 테러와의전쟁의 대표적인 결과물로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패전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얻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아프간전쟁은 911테러의 배후인 오사마 빈라덴을 처단했다는 것과 아프간에 얼마나 오래갈지 모르는 불안정한 친미 정권을 세웠다는 것 외에는 이득이 거의 없었고 이라크전쟁은 이득은커녕 손해만 본 전쟁이었다. 사담후세인을 죽였지만 오히려 이라크의 치안은 말그대로 개판이됬고 후세인의 죽음은 내전과 후에 IS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기때문 게다가 전쟁의 명분인 대량살상무기는 코빼기도 보이지않아서 국재사회에게 욕만 잔뜩 먹었고 반미국가들의 반미의식은 더욱 심화되었다. 막대한 군비를 소모해놓고 이런 결과가 나왔으니 그야말로 미국의 처참한 패배라고 할 수 있다.

    7.결론-테러와의 전쟁이 남긴 

    결론적으로 테러와의 전쟁이 남긴건 미국에게 부정적인 결과뿐이었다.

    막대한 군비를 사용해 커다란 경제적 손해를 봤으며 이로인해 미국의 국력은 크게 약화 되었다. 군비를 사용한 만큼의 성과를 얻긴 커녕 이라크전쟁은 손해만 보았다. 또한 외교적 피해도 받았는데 잦은 민간인 오폭과 이라크에 대량살살 무기가 없다는게 밝혀져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아 국가적이미지가 손상되었고 반미감정을 심화시켰다.

    결국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에게 큰피해를 입혔고 현재까지 그피해가 아직까지 영향을 주고있는 21세기미국의 현재까지의 최대의 실책 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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