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68 혁명은 5월 혁명이라고도 불리는 것으로,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사회의 모순에 저항하여 시작된 혁명이다. 이 저항 운동은 직접적으로는 정부가 낭테르 대학 분교의 학생들의 시위를 탄압한 데에서 기인하였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현대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물신주의 및 인간 소외 현상이 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 68 혁명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치며 전개되었다. 파리의 낭테르 대학 학생들의 저항으로 인해 낭테르 대학은 폐쇄되었다. 이로 인해 소르본 대학 학생들이 5월 3일 광장으로 나와 시위했다. 이는 프랑스 전역 학생의 시위와 파리의 노동자 3분의 2 가량의 총파업으로 이어졌다. 이후에는 베를린, 로마 등의 유럽과 영국, 미국, 일본, 칠레,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지까지 학생들이 학교를 점거하는 형태의 저항이 확신되었다. 당시 대통령 샤를 드골의 정부는 의회를 해산하고 국민의 신임을 묻기 위해 총선거를 실시하였다. 이 선거에서 여당이 승리하였지만 5월 혁명의 영향으로 1969년 국민투표에서 패배하였다. 이로 인해 드골은 대통령직을 사임하였다.
68 혁명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의의를 가진다.
첫째, 68 혁명은 인간 소외 현상으로 인한 사회 구조적 모순을 고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인간 소외 현상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 문명이나 문화가 도리어 인간으로부터 독립하여 인간을 지배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즉, 인간과 문명의 주객 관계가 전도되어 인간이 문명에 종속되는 것이다. 국민들이 기계의 부품처럼 취급받는 사회에 대한 저항의식을 느낀 것 자체로서 이 운동은 의미가 있다.
둘째, 이 운동은 학생들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에서 의의가 있다. 학생들이 사회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기에 문제의식을 느낀 것이고, 그렇기에 저항을 주도한 것이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일제 강점기에 광주에서 학생들에 주도한 항일 운동이 있었다. 이 운동에서는 학생들이 일제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였다. 68 혁명과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은 모두 학생들이 사회 모순에 대한 저항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