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는 부석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떠있는 돌, ‘부석’이 절 안에 위치하고 있어 ‘부석사’라고 불리우는 이 절은, 국보 제1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상대사가 신라 문무왕의 왕명을 받아 부석사를 건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창건 후 부석사는 신라 말 또는 고려 초기에 병화로 소실되어 9세기 후반에 다시 재건축 되었다고 한다. 이후 무량수전은 1358년 왜구의 침략으로 불에 타 다시 한번 큰 피해를 입었고, 1376년에 진각국사 원응이 고쳐 지었다고 한다. 부석사의 시련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1611년에는 보가 비바람에 부러지는 피해를 입었는데 그 다음해에 서까래도 함께 교체하고 단청도 다시 하게 되었다고 한다.
부석사는 경사지를 따라 여러 단의 석단 위에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범종각을 지나면 진입축이 꺾이면서 높은 축대 위에 안양루와 무량수전이 서 있다. 안양루 밑을 지나 계단을 오르는 과정에서 무량수전은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낸다. 무량수전 앞마당에 올라 무량수전을 뒤로하고 바라보는 소백산맥의 풍경도 아름답다. 무량수전을 뒤로하여 보는 소백산백의 경치도 아름답지만 부석사를 올라가는 길의 단풍나무와 은행나무 길도 무척이나 아름답다.
부석사 하면 무량수전, 무량수전하면 부석사라고 할 정도로 부석사의 무량수전은 유명하다. 무량수전은 아름다움으로도 유명하지만 유명함의 주된 이유는 바로 ‘배흘림 기법’을 적용한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의 ‘도리스 양식’과 비슷한 기법인데, 원래는 만약 기둥을 올바른 직선으로 만든다면 착시현상으로 인해 가운데가 들어가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도리스 양식이나 배흘림 기법은 기둥의 가운데만 조금 더 굵게 만들어 멀리서 보았을 때 기둥의 모습이 올바른 직선으로 보이도록 한 것이다. 무량수전은 이러한 놀라운 과학적 원리를 담고 있다.
또한 부석사 무량수전은 배흘림기둥, 공포의 구성 형식, 가구재의 구성 등에서 주심포 건물의 기본을 잘 보여주고 있다. 비슷한 시기의 건축물과 비교할 때 장식적인 요소가 적으면서 목조 건축의 형태미와 비례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건물로 평가받고 있고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고려시대 건물 중 하나로서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예산 수덕사 대웅전과 함께 고려시대 불전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건축물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부석사 무량수전 서쪽에는 부석이 있는데 이 바위는 의상대사를 흠모하던 당나라 선묘낭자가 변한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저 내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