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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작성자 박민주  |   local 대한민국
  • Jul 16, 2016,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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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ated by 박민주   |   Jul 16, 2016, 16:43   |   Korean
  • 측우기를 발명한 문종
  • 국가가 성립되고 농사가 주업이 되자 사람들은 기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흉년과 풍년과 직결된 강우량을 알기 위해 비의 양을 측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비의 양을 측정하는 방법은 비가 오면 흙을 파서 빗물이 땅 속에 스며든 깊이를 살펴보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정확한 강우량을 측정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이러한 이유에서 정확한 측정을 위해 고안해낸 것이 바로 측우기 였고, 세종 24년 이후 전국에 측우기를 보급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측우기는 세계역사에서 볼때 규격화된 우량계로 다른 나라보다 200여 년 앞선 1441년에 발명한 세계 최초의 우량계이다. 뿐만아니라 측우기의 치수는 현대에서 쓰이는 우량계와 같다. 강수량을 재기에 적합한 높이와 너비로 계산되어 만들어진 것이라는 뜻으로, 측우기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만큼 위대한 발명품이다.
    그렇다면 이 위대한 발명품을 누가 만들었을까?
    측우기는 흔히 장영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세종실록을 살펴보면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려주는 글이 기록되어 있다.
     
    근년 이래로 세자가 가뭄을 근심하여, 비가 올 때마다 젖어 들어 간 푼수[分數]를 땅을 파고 보았었다. 그러나 적확하게 비가 온 푼수를 알지 못하였으므로, 구리를 부어 그릇을 만들고는 궁중(宮中)에 두어 빗물이 그릇에 괴인 푼수를 실험하였는데, 이제 이 물건이 만일 하늘에서 내렸다면 하필 이 그릇에 내렸겠는가. [세종실록 92, 세종 23429일]

    위 세종실록에서 언급된 세자가 바로 세종대왕의 첫째아들이자, 조선의 제5대 임금인 '문종' 이다.
    문종은 세종을 닮아 학문을 즐겼으며, ‘8세에는 어른들도 헷갈린다는 세자책봉식을 실수없이 해내어 여러 신하들이 기뻐하고 경사스럽게 여겨서 눈물을 흘린 자도 있었다.’라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총명했다. 학문뿐만 아니라 무예에도 능통하여 문종대에 4군6진의 국경선을 완성해 국방력을 강화시켰다. 세종 말기에는 문종이 세종 대신 수렴청정을 맡았기 때문에 문종은 그야말로 뛰어난 머리와 풍부한 경험까지 가진 준비된 군주였다. 
    이러한 문종은 스물 일곱의 세자시절에 가뭄에 근심이 많아 비가오는 날이면 궁궐 앞에서 땅을 파며 강우량에 대해서 연구하였고, 고심 끝에 구리그릇을 만들어 그릇에 고인 물의 양을 측정하게 되었다. 이렇게 문종이 측우기를 설계하고 정확한 기계 제작을 위해 아버지 세종이 붙여준 사람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발명왕 장영실 이다.
    이렇듯 측우기의 설계는 문종이, 측우기 제작은 문종과 장영실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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