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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park so hee  |   local 대한민국
  • Jun 10, 201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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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ated by park so hee   |   Jun 10, 2017, 09:46   |   Korean
  • 일본과 중국의 관계
  •    일본과 한국은 역사속에서 수많은 갈등을 겪어왔고, 현재도 위안부 문제, 역사왜곡 문제 등 대립이 만연한 상태이다. 그렇다면 중국과 일본의 관계는 어떠할까? 중국과 일본은 역사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으며 이들의 정치적, 문화적 관계는 어떠할까?


       중국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문화에 심대하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견수사, 견당사와 이에 따른 헤이안 시대 때의 번영으로 그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견수사를 보낼 시절에는 수나라에 "해 뜨는 나라의 천황이 해 지는 나라의 황제께 보낸다."라는, 수나라 입장에서는 황당할 국서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수나라에서는 변방 촌동네의 오랑캐라 예를 모른다고 생각해서 넘어갔다고 한다.

       다만 중국이랑 직접적으로 붙어있던 반도인 한국과는 달리 중국이랑 멀리 떨어져 있던 섬나라인 일본에서의 중국 문화는 한국보다는 중국 문화의 전통성에 덜 구애되어 비교적 자유로이 발전해 온 경향이 있다. 일례로, 한국 한자음은 중국 한자 발음의 반절음 체계에 종속적이지만 일본 한자음은 소리만을 따왔고, 고유어와 한자를 대응시키는 훈독의 전통이 발달한 것을 들 수 있다. 다만 히라가나의 경우에는 음차하는 한자 필기체를 간략화 한 것으로, 가타가나는 부수의 일부를 딴 것, 히라가나는 초서를 정형화한 것이다.

       중세에는 쿠빌라이 칸이 주도한 여진과 몽골의 연합군의 일본원정이 있었고, 또 무로마치 시대 말기와 센고쿠 시대에 일본 큐슈 등의 왜구가 명나라의 남쪽을 침략하여 "북로남왜"로 명나라의 주된 근심거리가 되었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막부의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가 명에게 일본 국왕으로 책봉을 받고 함께 왜구를 토벌하기도 했다. 임진왜란은 일본의 정규군과 명나라가 직접적으로 마주친 역사상 최초의 사례로, 심유경과 고니시의 회담이 대표적이다.

       근대에 들어서는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를 일찍 맞이해 관계가 역전되어 수많은 일본식 한자어가 현대 중국어에 수입되기도 하였다. 반면 중국은 일본에게 청일전쟁, 21개조 조약(5.4 운동), 만주사변(괴뢰국 만주국 성립), 중일전쟁, 특히 난징 대학살등을 통해 수많은 화를 겪었고, 당시로서는 청나라의 일부였던 대만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는 등 여러 갈등의 씨앗이 뿌려졌다. 비록 중국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하고 일본이 패배했기 때문에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대만 또한 중국에게 되돌아왔으며 또한 지금의 중국이 뛰어난 성장세를 보이고 크게 우세해졌으나, 아직 중국이 동아시아의 유일한 패권국이라 하기에는 아직 일본이라는 존재가 무시못할 정도라 경계심을 갖고있다.

       식민지였던 한국과 승전국인 중국은 일본을 대하는 태도에 차이가 있다. 한국은 주로 수세적 입장에서 사죄와 피해보상에 대해 일본에 요구하는 반면, 중국은 아시아에서의 패권을 두고 공세적 입장에서 일본을 대하며 이에 일본은 미국과의 공조를 통해 모습으로 대립하는 양상을 띈다.


       1952년 화일 평화조약으로 중화민국과 국교를 정상화했지만, 1972년 중화민국과 단교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했다. 이는 닉슨 독트린과 맞물려 이뤄진 것이다.

       중화민국, 중화인민공화국 모두 일본에 대해서 국가적 차원에서의 청구권과 배상권을 행사하지 않았고, 과거 일본에게 피해를 입은 중국인들은 개인 자격으로 일본에 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긴 하나, 중국은 엄연히 2차대전 시기 일본이랑 전쟁을 벌여 이긴 승전국이라는 걸 감안해야 한다. 장제스는 '원수를 은혜로 갚는다'라는 태도였고 마오쩌둥 역시 일본과 국교를 맺을 때 인민들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우리가 이겼으니 사죄와 배상 따윈 필요없다'라는 태도를 보였다. 근데 이건 오해로, 당시 중국은 서방의 주축인 미국의 공산주의 국가에 대한 전략을 고려하여 못 받을 것이라 생각하고 일본과 교류하기 위해 짠 국가 전략이었다. 당연히 일본인들은 우리가 중국에게 엄청난 사죄와 배상을 해야만 할 줄로 알고 있었으나, 장제스와 마오쩌둥이 배상을 포기하자 지금까지 수많은 중국 장년층들에게는 아직도 끔찍한 난징 대학살이나 마루타, 충칭 대공습 등의 악몽이 남아 있으며, 이는 반일 시위의 원인이 되고 있다.

       2010년대, 아베 신조 총리의 집권 이후로 일본이 우경화의 길을 걸으면서 중일관계는 다시 험악해 지는 분위기다. 단순 역사적 문제만이 아니라, 미중 패권경쟁에서 일본은 미국을 우방으로 두고 있는 입장이고 영토 분쟁까지 겹쳐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중이다.


       한편, 야스쿠니 신사 문제와 관련하여 관계가 악화되었다. 일본에는 2005년 중국에서 일어난 반일 활동 등이 많이 보도되었고, 또한 2008년 6월, 미국의 민간조사기관 뷰리서치센터의 조사에서는 중국이 호감이 가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이 84%(전년도 대비 17% 증가)로 나타나, 조사한 24개국 중에서 가장 높았다. 또한 일본인의 중국에의 여행자도 감소하였다. 중국에서는 전년도 대비하여 9%가 감소하였으나, 그럼에도 69%가 일본이 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조사결과가 나와, 전과 다름없이 양국민이 상호간에 반발하고 있다는 것이 명확히 드러났다. 중국의 보도는 중국공산당의 통제하에 있어, 일반국민들에게 일본으로부터의 정부 개발 원조나 사죄 등이 알려져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쓰촨 대지진 때, 자위대의 구호 활동 등, 중국인으로부터의 감사가 표시되기도 한다.


       이렇듯 일본과 중국은 수많은 교류와 갈등이 함께 공존했다. 중국과 일본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대화를 통해 분쟁과 국민들 간의 악감정을 해소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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